백사마을의 어린 왕자
공릉역 2번 출구 (110)
70년대 연세대 앞 신촌의 주택가는 그리 잘 사는 동네가 아니었다. 지금의 현대백화점 자리엔 오래된 재래시장이 있었는데 입구에 늘어선 어물전과 닭을 직접 잡아 팔던 닭고기 가게 때문에 길바닥은 늘 질척했다. 신촌 기차역 부근 바람산 중턱에 있었던 우리 집에서 국민학교에 가려면 개량 한옥 빼곡한 골목을 지나 비린내 물씬 풍기는 시장을 가로질러야 했다. 어른들 눈에 비친 동네와 거리는 칙칙한 회색빛이었겠지만 호기심 가득한 아이에겐 신기하고 재미있는 알록달록한 빛깔의 등하굣길이었다.
그 길에서는 번데기 장수 할아버지와 뽑기 아주머니가 호시탐탐 아이들 호주머니의 동전을 노리고 있었고 운 좋은 날엔 동그란 3D 필름을 들고 나타나는 ‘뷰마스타’ 아저씨도 만날 수 있었다. 동네 한 켠 공터에서 주말마다 벌어지는 ‘특별 공연’도 아이들에겐 신나는 볼거리였다. 훗날 그들이 엉터리 약을 파는 뜨내기 ‘약장수’들임을 알았지만, 그 시절엔 슈퍼맨과 동급의 괴력을 지닌 ‘차력사’들이었고 한참 뜸을 들이다 잠깐 보여주는 어설픈 묘기에 난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보내곤 했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 친구, 학원 친구 이외에 ‘동네 친구’란 개념이 낯설겠지만 어린 시절 내겐 단짝처럼 몰려다니는 동네 친구들이 꽤 있었다. 어른들은 그 아이들 이름은 모르면서 전기밥솥집 아이, 철물점집 아이, 간장집 아이 하는 식으로, 부모님 직업을 아호처럼 불렀고 어머니가 약사였던 나는 그때 ‘약국집 아이’였다. 가정집은 이제 다 사라지고 오피스텔과 원룸으로 가득 찬 그 신촌 동네를 가끔 찾아가면 어린 시절 함께 오징어, 다방구, 만세국기를 하던 친구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많이 그리워진다.
추석 연휴 때 방문했던 대학로 혜화 아트센터에서는 전대근 작가의 개인 유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와 옛친구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던 이유는 전 작가의 캔버스에 여러 형태로 담겨있는 ‘백사마을’의 모습 때문이었다.
불암산 자락에 위치한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 그 지번을 따 ‘백사마을’로 불리는 곳의 별명은 ‘서울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다. 1967년부터 용산, 청계천, 안암동 일대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을 이곳에 강제 이주시킨 게 백사마을의 시작이다. 기록에 의하면 초창기 이곳에 정부는 30평 남짓한 천막집들을 지어놓고 분필로 선을 그어 4가구씩 들어가 살도록 했다고 한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한때 1,700여 가구가 넘을 정도로 마을이 커진 적도 있었지만 2025년 재개발과 재건축을 앞둔 현재 주민들 대다수가 떠나고 100여 가구 정도 남아있다.
백사마을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계기는 겨울철 연례 행사처럼 여야 정치인들이 이곳을 찾아 연탄배달 봉사활동을 벌인 탓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고마움을 느끼는 것도 잠시. 마음에서 우러나는 봉사활동보다 얼굴에 연탄 화장을 하고 사진찍기에 더 몰두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가난을 도둑질하는 것 아니냐’는 매서운 비판도 적지 않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우리 병원에서 불과 3km도 채 안 떨어진 이곳을 한번 찾아가 둘러보고 싶었으면서도 주저했던 까닭이.
차를 몰고 바로 옆 언덕 도로를 이래저래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지나치면서 힐끗힐끗 곁눈질로 쳐다봤던 백사마을에는 삶의 고단함 못지않게, 마치 저녁밥 짓는 냄새같이 구수하고 푸근한 인정도 배어있으리라 생각했다. 용기가 없어 둘러보지 못했던 그 백사마을의 정경을 뜻밖에 전대근 작가의 그림에서 만끽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작가란 호칭이 아무래도 어색한 전대근 작가는 사실 우리 원자력병원의 정형외과 전문의다. 올해 정년을 맞이하는 의사 선배로 서울의대 미술반 출신이다. 많은 논문을 발표했고 영어 교과서를 쓸 정도로 골육종(osteosarcoma)과 골연부종양 수술의 국제적 권위자인 전대근 선배를 그동안 나는 여러 면에서 오해하고 있었다.
체격도 크고 목소리도 큰 그는 굉장히 급한 성격의 소유자다. 게다가 워낙 자기 의견을 강하게 표현하기에 부딪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러나 혜화 아트센터에 전시된 그의 작품 170여 점을 꼼꼼히 살펴본 나는 진실한 그의 모습이 평소 보이는 표현형(phenotype)이 아니라 그의 그림 속에 들어있음을 깨닫는다.
그가 세밀하게 그려낸 백사마을은 그저 자신의 직장과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화폭에 담기 좋은 독특한 옛날 풍경을 지니고 있어서 택한 곳이 아니다. 일견 척박하고 차가운 세상에 순수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불어넣고 싶어 작가가 용의주도하게 선정한 대상이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가난하고 볼품없는 이 마을에 다양한 희망의 상징들이 보태진다.
백사마을 위 하늘에 둥실 떠 있는 연인들(황순원 소나기의 주인공 남녀도 있다), 커다란 고래, 호랑이 모습의 산신령 등등. 그중 압권은 어린 왕자와 여우다.
어린 왕자와 여우가 생텍쥐페리가 타던 프로펠러 복엽기와 함께 백사마을에 강림한다. 백사마을은 이내 우울한 현실에서 벗어나 꿈과 환상의 동화 속 마을이 되고 그곳의 아이들은 행복에 가득 찬 미소를 짓는다. 이제 이 그림을 감상한 관객들은 모자 같이 생긴 그림을 보고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임을 단박에 알아챌 것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면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전대근 작가가 개최한 개인전의 주제는 <노스탤지어(Nostalgia)>였다. 제목처럼 그의 작품 속 백사마을은 내 어릴 적 개천이 복개되기 전 신촌 거리에 대한 향수를 강렬하게 불러일으켰다. 백사마을에 소독차가 하얀 연기를 뿜으며 지나갈 때 소리 지르며 그 뒤를 따라가던 작품 속 ‘정만이’들의 얼굴이 신촌의 전기밥솥집 아이, 철물점집 아이, 간장집 아이 얼굴로 바뀌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곧 정년퇴직을 하는 전대근 선배의 마음 깊은 곳에 영원한 동심이 자리하고 있음을 그제야 알았다. 어린 왕자의 그것처럼.
(참고: 인별그램 daegeunjeon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