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7일
오후 4시 폭발음이 들리고 벽이 흔들리며 유리창이 날아갔다. 테러나 지진으로 판단한 나는 간호사들과 함께 지하실로 내려가려는 순간 벽에 불이 붙어 번지고 있었다. 소화기의 안전핀을 빼고 불을 껐다. 조금만 늦었어도 건물이 전소했을 것이다. 소화기로 불을 꺼 본 것은 평생 처음이다. 병원 안에서 폭발물이 터져 인도와 차도에는 유리 파편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고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다.
연락하지도 않았지만 소방서, 경찰, 가스안전공사, 한전, 과학수사팀 등이 들이닥쳤다. 각 팀들의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했다. 테러사건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 했다.
아수라장의 현장을 남기고 그들은 돌아갔고 혼자 남았다. 전기가 끊겨 캄캄한 암흑 속에서 고독을 느꼈다. 찬바람이 깨어진 창으로 몰아친다. 며칠 전 미국에 있는 작은 딸이 집에 무슨 일 없는지 꿈이 좋지 않다고 전화한 것이 생각난다. 노숙자들과 시리아 난민들 생각이 스친다. 소식을 들은 근처의 사람들이 찾아와 진심으로 위로를 해주고 걱정을 해준다.
다친 데가 없으니 다행이고 큰 폭발에 인명피해가 크지 않으니 감사하다고 위로한다. 어떤 사람은 따뜻한 차를 가지고 왔다. 집에 연락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전화를 했다. 병원에 일이 있어서 늦게 간다고 하니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다음날 예약한 환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잠이 오지 않는다. 은퇴할 것을 심각하게 생각한다. 이제 나를 나로부터 해방시켜줄 시간이 된 것 같다.
■2016년 1월 8일
TV 뉴스에도 사고가 보도됐고 인터넷에는 그 현장이 그대로 노출돼 예약한 환자들이 먼저 전화를 한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찾아온다. 망가진 차주인, 몸을 다친 사람들이다.
경찰서에서는 조서를 만들어야 된다고 호출이다.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라고 한다. 청소도 못하고 수리도 못하고 있다. 환자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정신이 없다.
과학수사팀의 최종 결론은 나오지 않았지만 병원에 있던 부탄가스가 특별한 이유 없이 폭발한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 쓰지 않는 부탄가스통이 언제부터인가 있었다.
우리의 과실이 아니라 부탄가스의 제조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피해자들에게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처신을 하게 된다. 미안합니다. 원하는 대로 해주겠습니다. 그들의 요구대로 해 주었다. 한 사람도 큰 소리를 낸 사람은 없었다. 다행인 것은 큰 인명 피해가 없는 것이다. 우리 직원들이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었고 길 가는 행인들이 다칠 수도 있었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차들과 행인들로 가득하다. 어제 이렇게 사람들과 차들이 많이 있었다면 피해는 훨씬 컸을 것이다.
■2016년 1월14일
사고 일주일째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창문이 끼워지고 허물어진 벽과 문이 수리되고 도배를 했다. 수리하고 피해자를 만나면서 심신이 너무 지쳐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을 텐데 늙은 모양이다.
4시에 정관수술을 한 환자가 출혈이 있는 것 같다고 전화가 왔다. 음낭에 출혈로 부어있었다. 개업 30년 동안 10번 정도 정관 수술 후 출혈이 있었지만 나의 병원에서 처치하고 문제가 없었다.
심신이 지쳐 있는 나는 근처 대학병원에 환자를 데리고 가서 마취를 하고 혈종을 제거했다. 밤 11시에 스텝선생님과 4년차 선생님이 수고 해주셨다. 나도 같이 들어가 도와주었다.
최선을 다한 나에게 환자도 고맙다고 한다. 새벽 1시에 정말 지쳐 있는 몸과 마음을 소유한 나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택시기사는 혼자 말을 한다. “10년 전에 이혼했고 아버지는 뇌출혈로 의식이 없이 요양병원에 계시고 어머니는 치매로 모시고 있는데 매일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이 때문에 살고 있습니다. 손님이 타지 않았으면 막 소리 지르고 운전했을 거예요. 나를 몸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싶은 충동이 가끔 일어나요.”
망원경으로 보면 모두 잘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다 힘들게 사는 것 같다. 차에서 내렸다. 겨울나무들이 벗겨진 몸으로 찬바람을 맞으며 오래참고 견디고 인내하며 버티고 있다. 봄이 온다는 믿음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