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체계 문제와 의정갈등 해결 방안 논의, “의료계 소통 위해 더 노력해야”
한국 의료체계 문제와 의정갈등 해결 방안 논의, “의료계 소통 위해 더 노력해야”
  • 박한재 기자
  • 승인 2024.07.27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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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특위, ‘대한민국 의료 사활을 건 제1차 전국 의사 대토론회’ 개최
박형욱 교수, “한국의료는 갈라파고스 의료,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규제”
“국민이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들 많아, 진실을 알기 쉽게 전파해야”

의료계의 소통 방식에 대한 지적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지난 26일 대한의사협회 지하 1층 대회의실에서는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올특위)가 주최하고, 전국의과대학교수협회와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의료 사활을 건 제1차 전국 의사 대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이어진 두 번째 섹션은 ‘한국 의료의 모순과 새로운 거버넌스’라는 주제로 임정혁 올특위 위원장(대전광역시의사회 회장)이 좌장을 맡아,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이 ‘갈라파고스 의료의 종착점과 대안’에 대해 발표했다.

박형욱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 분야에서 극단적 갈등이 계속되는 원인과 해결 방법’을 골자로, △서론-갈라파고스 의료와 전공의 박해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의료체계 △한국의 갈라파고스 의료체계 △갈라파고스 의료의 종착점-의료의 왜곡과 파탄 △왜 개선되지 않는가? △결론-한국 의료체계의 개혁과 구체적 정책 제언의 순서로 이야기를 풀었다.

박 교수는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많은 전공의 그리고 의과대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며 “현재 의료계를 강타하고 있는 갈등은 1차적으로 지극히 과도한 의대 지원 정책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그 핵심에는 필수의료 파탄과 몰락으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구조적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를 ‘갈라파고스 제도’에 비유해 “한국의료는 갈라파고스 의료다.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규제”라고 말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남아메리카 본토에서 서쪽으로 약 1000km 떨어진 태평양에 위치한 화산 제도이다. 다양한 기후의 공존으로 독특한 생태계를 유지해 유일종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찰스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에 기초가 된 장소로 유명하다. 

박형욱 교수는 “민주주의는 나라마다 다르고, 의료제도도 나라마다 다르다. 하지만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의료체계에는 공통되는 골격이 있다”고 설명하고, “의료보장 정책은 의료의 질, 접근도, 비용이라는 상충된 목표를 추구해 나간다”며 “우리보다 앞서 의료보험을 만들고 시행한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 세 가지 목표를 위해 우선 국가의 재정을 투입해 병원을 운영한다. 반면 우리나라 공공병원은 환자에게 진료비를 받아 운영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캐나다와 영국 등 해외 공공의료 시스템의 사례를 통해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의료체계는 의료 보장을 명분으로 private care(개인이 비용을 지불하고 무보험 진료를 받는 것)에 대한 국민의 선택권을 박탈하지 않으며, 의사를 강제로 공공의료에 동원하는 권력 남용을 저지르지도 않는다”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갈라파고스 의료체계’에 대해서 박 교수는 △강제동원에 의한 건강보험 단일의료체계 △교차보조 없이 생존 불가한 강제수가 △의사를 불법으로 몰아넣는 비급여 관리체계 △전공의 수련과 경험을 보상하지 않는 불공정 △필수의료 이탈의 원인인 과도한 민형사책임 등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러한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문제의 원인을 왜곡하며 책임전가 △구체적 정책 지표 없이 화려한 말잔치의 반복 △관료가 조종하는 위원회-무지와 왜곡, 입법추진 △더 파탄내는 보건복지부 정책 △의료 관료주의에 질식되는 의료현장 △헌법재판소와 사법부의 문제 △공정한 제도에 대한 근본적 성찰 부재 △합리적 정책을 특권요구로 왜곡 △전공의보호법으로 전공의 박해 등을 제시했다. 

그는 발표에서 ‘한국에서는 의사들이 자기 돈으로 의료기관을 만드는데 맨 끝에 가서는 하나밖에 없는 monopoly insurance system에 딱 갇혀있다’는 박현미 전 재영 한인의사회장의 말을 인용해 “정부는 리스크를 하나도 안 지면서 가격만 딱 정해두고 있다”고 질책했으며, “한국은 생명이 소중하니 의사들은 헐값에 일하라고 한다”, “필수의료에서 적자를 복 만든 주범은 정부”, “복지부 자료를 보면 화려한 말잔치의 반복이다”, “관료들이 모든 상품의 가격을 평가해 매길 수 있다면 사회주의를 채택하는 것이 합당할 것”, “보건복지부는 의료현장의 말을 듣지 않는다. 탁상머리에 앉아 비현실적인 명령만 내린다”, “국가가 정당한 대가 없이 전공의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등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박형욱 교수는 “갈라파고스 의료의 종착점은 의료 왜곡과 파탄”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의료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언했다. 박 교수는 특히 “비전문가적인 관료가 허수아비 위원을 악용해 대화를 흉내 내는 대한민국 거버넌스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패널 토의에서 참여자들은 의료계의 소통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먼저 ‘의료 정상화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발표한 정효곤 이노무브 대표는 의정갈등에 있어 의료계에 필요한 전략에 대해 설명했다. 정 대표는 “조금 전 박형욱 교수가 한 얘기는 구구절절 매우 값진 얘기였다. 의료계가 옳은 것 같은데 게임에서 밀리고 있어 안타깝다”며 “지금 의료계 상황에서 여론이 굉장히 야속한 존재이지만, 역설적으로 믿을 것은 여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론이라는 게 참 특이하다. 자세히 보면 가만히 있지 않고 항상 움직인다”며 “현재 여론이 부정적이라는 것은 다 안다. 하지만 의대증원과 관련해 의료계에 우호적으로 바뀐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찾아보니 실제 그랬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가 전국 성인 남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대중원 찬반 설문 자료에 따르면 2023년12월(찬성 89.3%, 반대 10%)과 2024년2월(찬성 76%, 반대 16%, 기타 9%)에 비해 2024년6월(찬성 62%, 반대 27.5%, 기타 10.5%) 찬성 의견이 감소하고, 반대 및 기타 의견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효곤 대표는 “‘어떻게 여론을 바꿀 수 있겠느냐?’가 핵심 질문이 될 것”이라며 “국민이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다. 진실을 알기 쉽게 전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에게 전달할 내용을 결정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원천 자료를 만들고, 퍼트려 나갈 수 있는 웹사이트, 소셜미디어 계정 등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수련의와 의대생들이 참여해 MZ세대의 트랜드에 맞게 짤막한 동영상, 만화 등 메시지를 뽑아 간략하게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들이 생산돼야 할 것 같다”고 제안했다.

토의에 참여한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발표를 들으며 깜짝 놀랐다. 우리가 이런 의료제도를 괜찮은 거라고 착각하고 살아왔구나 혼란스러웠다”며 “이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 첫 번째 과제가 상황의 심각성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 교수는 “지금 상황이 우리나라의 의학 교육과 의학 현장을 얼마나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지를 국민에게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며 “민주화된 사회에서 전문가는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굉장히 중요한 책무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어려운 것”이라며 “이러한 부분이 의사협회와 의학회가 열심히 노력해 주셔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강주안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의료계에 대한 언론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는 “민감한 사항이 터지면 언론계에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그러나 언론이 의료계에 대해서만 색안경을 끼고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의료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는 ‘소통의 문제’가 있다. 지금의 투쟁방식, 집단행동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소통의 측면에서는 의료계가 굉장히 부족함이 많은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원하는 대로 어떤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그것이 좀 염려스럽다”며 “의료계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더 많은 대화와 토론을 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임정혁 올특위 위원장은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고 있으면 정책과 상황이 좀 더 나아지리라고 기다린 게 세월이 흘러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며 “불리한 점이 있더라도 어떤 형태든지 국민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고, 접촉해 나가야 할 것 같다”고 당부했다.

끝으로 대한의사협회 최안나 총무이사는 “이번 의정갈등을 기회로 수련제도나 정책 결정의 거버넌스 문제 등 뭐라도 바꿔야 된다고 생각해 이번 토론회를 개최하게 됐다”면서 “사실 의료계 내부에서 소통하면서 정부가 요구하는 단일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오늘 말씀해 주신 내용을 기초로 바꿔나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올특위는 이번 제1차 전국 의사 대토론회를 기점으로 운영을 잠정 중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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