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외과 의사로서 트레이닝과 전임의 2년, 봉직의 2년 후 우연히 서울시 강서구에서 개원하게 됐다. 지난 2007년 6월이었다. 이듬해 지역의사회인 강서구의사회에서 상임이사로 활동하게 됐다. 구의사회는 서울시 25개구가 있고, 의협의 직속 하부 조직으로 회원들과 호흡하는 의료계의 최전선을 사수하는 첨병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12년부터 2번 총무이사직을 수행하여 구의사회의 회무를 익히고, 의사로서의 업을 수행하며, 회원들의 권익보호와 회원관련 행사, 지역 주민에 대한 봉사 활동 등을 경험하게 되었다. 두 번의 부회장직을 수행한 후 2024년 2월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운명의 2024년 2월 윤석열 대통령 발 의료대란을 경험하게 됐다.
개원을 하면서 겪었던, 의사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저수가 문제, 사법 리스크에 더해 가장 파괴적인 비합리적인 정치적 의료정책이 의료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찬란히 빛나던 k-의료를, 의료의 미래세대를 현장으로부터 이탈시키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무고한 국민들인 중증환자들의 희생은 누적되고, 쌓여만 가는데, 불법, 불통, 불합리한 의대정원확대 정책은 고수되며, 역사 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기에 어이없이 국민들이 희생당하는 실질적인 내란의 사태가 지속되기를 12개월이다. 의대 정원 확대 청문회를 통해 그 불법성과 의료계와의 소통 없음, 불합리성이 명백히 밝혀졌지만, 어떤 해결의 실마리도 풀리지 않았고, 심지어 의료대란의 몸통 대통령이 또 한 번 어이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탄핵당하는 와중에도 의료계의 사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의료는 사회보장의 한축으로서 의료계는 저소득시대의 사회적 요구에 발맞추어 저수가, 당연지정제등을 감내하며, k-의료를 발전시켜 왔으며, 이는 국민건강수호와 전문가로서의 자긍심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봉사정신의 실현이었다. 그러나 찬란히 발전하는 조국과는 대조적으로 k-의료는 비용억제정책을 과도하게 지속하여 기피 과 문제의 단초를 제공하였고, 거듭되는 의료계의 개선요구도 외면하여 오다가 로스쿨제도 도입으로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법 리스크의 파괴적 영향마저 더해 기피과 문제는 의료계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의료계는 의료정책연구원, 의료계의 리더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외면해 오다가 내놓은 해결방안이 초유의 의료대란을 초래한 의대정원확대 정책이었다.
정부주도의 비용억제적인 의료정책에 협력해온 의사들은 졸지에 개혁이 필요한 의료 카르텔로 지목되고 대통령과 정부의 정치적 이해 관계를 위한 의대정원확대의 실기로 촉발된 미래의료세대인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이탈을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했다. 그리고 12개월이 흘렀지만 해결사를 자처하며 나서는 사람도 없고, 대통령이 탄핵되어도 더욱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한다.
한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의 자리를 지키며 소통하고 협력하여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수적일 것이다. 만약 이번사태도 그러한 과정의 일환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소통 없이 협력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확인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전문가로서 진료실을 지키며 국민건강 수호와 지속 가능한 건강 보험시스템을 위해 헌신하던 의료계는 미래세대의 이탈이라는 정치적 희생양으로 전락했고, 더 이상 진료실에만 머물 수 없는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회적 아일랜드로 전락한 의료계의 앞날은 누가 밝혀줄 것인가?
의료계를 향한 외부적 위협과 내부적 위협에 맞서 싸워나가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역의사회의 역할과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진료실을 지키며 전문가적인 삶에 충실하였던 의료계는 사회적 고립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되는 정치적 탄압에 신음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정책적 탄압에 맞서 의료계가 취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강화는 어디서부터 시작하여야 하는가? 가장 강력한 투쟁력을 가진 의협 집행부를 꾸리면 되는가? 가장 강력할 줄 믿었던 전임 회장은 스스로의 문제로 불신임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새로 출범한 의협의 집행부는 미래세대까지 품으며 단일대오를 꾸렸다.
구의사회의 전통적인 역할은 회원 친목과 화합에 역점을 둔 대회원 행사가 주를 이룬다. 야유회, 골프행사, 영화 관람, 스포츠 관람, 동호회 지원 등이 그것이다. 보수교육과 면허 갱신 사업을 통해 행정적인 업무도 수행하고 있다. 구의사회의 사정에 따라 불우이웃돕기, 장학금 사업등 대구민 사업이 있고, 회원들의 권익 보호와 민감한 의료 이슈에 대한 투쟁에 있어서는 주로 시도의사회의 하나인 서울시 의사회와 의협의 리더십을 따라왔다.
지난 1년간 의료대란 사태를 마주하며 의료계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이었나? 의료의 미래 세대들은 학교와 병원을 떠나 방황하고 있고, 회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역대급 집행부를 꾸렸던 의협은 출범 후 8개월여 만에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대통령이 탄핵된 후에도 의료계를 향한 탄압은 지속되고, 정치권과 언론 및 국민여론도 호의적이지 않은 고립무원의 아일랜드를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다시 신구조화를 장착한 의협의 새집행부가 탄생하였지만 사태해결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국가의 힘이 주권자인 국민에게 있는 것처럼 의료계의 힘도 회원들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진료실에서 국민건강수호와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시스템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기성세대들은 정치권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미래의료세대들의 이탈을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다. 고립된 의료계를 사회와 연결시켜 건전하고 올바른 미래의료를 만들어가야 할 국민적 공감대에 기반 한 의료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계약이 태동할 시험대가 의료계의 발 앞에 펼쳐진 것이다. 지난시간 타협하며 지내왔던 시간들은 결과적으로 사회적 아일랜드의 절벽 끝에 서있는 모습일 뿐이었으며, 이를 헤쳐 나가는 것 또한 의협의 집행부가 아니라 회원 스스로 현실을 인식하고 사회적 연결을 실천해나가는 행동에서 비롯됨을 이제라도 자각해야할 시점이 된 것이다.
이를 위해 구의사회는 전통적인 회원 친목 도모와 화합, 의료행정 등 대회원 사업에 더해 국민들로 이루어진 지역민들의 지지와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대국민(대구민) 사업의 균형을 모색하고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슴속에만 담겨진 진심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우리의 진심이 무엇인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펼치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공공의료의 최전선 보건소와의 관계 개선을 통한 방문 진료, 재택진료 등 일차의료에서 할 수 있는 공공 의료적 업무 분담, 경찰서와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통한 회원 보호, 구청의 구민 건강증진 사업에 주도적으로 사업을 제시하고 협력을 이끌어내며, 지역 국회의원들과의 교류를 통해 정치적 협력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야하며,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불우이웃돕기, 장학금 사업 등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사회적 연결을 위한 역할에 소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활동을 시작한다고 해서 즉시 모든 난제들이 해결될 것은 아니다. 농부가 가을에 멋진 추수를 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차가운 봄에 씨를 뿌리고 무더운 여름과 병충해를 쫓으며 가을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위기를 그냥 흘려보낸다면 다시는 올바른 전문가가 주도하는 보건의료문화의 정착이라는 기회는 오지 않을 듯 하기에 미천한 경험에 기대어 회원들과 함께 의료의 최전선 지역의사회인 구의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전 국민의 건강 아니 인류의 건강을 달성하는 것이 의료계의 꿈이라면, 그 꿈의 끝에서 스스로 사라져 가더라도 진정 행복할 수 있는 의료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행복하게 사라져 갈 수 있는 그날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정진해 나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