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수 부족?···“의료전달체계 무시한 의료이용행태가 더 문제”
의사 수 부족?···“의료전달체계 무시한 의료이용행태가 더 문제”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4.09.1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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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 - ‘잘못되고 호도된 의료계 죽이기 방송 및 기사에 반박한다 : 호반’
의료 접근성.의사 수준 세계 최고···낮은 의료수가로 ‘박리다매’식 진료해야
공공병상 비율 높은 국가와 민간병원 대부분인 우리나라 의사 수 비교 무의미
자료=서명옥 의원실 제공

정부와 언론은 2000명 의대 정원 증원 계획을 강행하면서 우리나라의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일명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 런’ 등으로 불리는 필수의료의 위기와,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격차 등의 원인이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의대 정원 증원을 통해 의사 수를 늘리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의사 수 늘리기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의료비 지불보상체계 등의 의료제도와 고유한 문화와 환경,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추이 등 각 국가 간의 차이를 살펴본 후 적정한 의사 수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의사 수를 논의하기에 앞서 의료전달체계를 무시한 우리나라의 의료이용행태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선 정부가 자주 인용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보건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사 수가 수치상 전 세계 최하위 수준인 것은 맞다. 이에 따르면 OECD 평균 1000명당 의사 수는 3.7명이며 대한민국은 2.2명(한의사 제외)으로 세계에서 가장 적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OECD의 각종 보건의료 지표에 있어서 대부분 세계 최고 수준의 성적을 보이면서도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외래 진료를 받으려면 적게는 수주에서 수개월 동안 대기해야 하는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언제라도 자유롭게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수술대기 시간도 외국과 비교하면 극히 짧아 접근성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우선 우리나라보다 의사 수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 유럽 국가들의 공공병상의 비중은 대부분 70%가 넘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민간병상의 비중이 90% 수준으로 가장 높은 국가에 속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의사가 공무원과 같은 신분으로 환자를 많이 진료해야 할 동기가 없이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환자 수만 진료하는 국가들과 민간의료기관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의 의사 수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당장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대표적인 국가인 영국은 지난 2022년 12만 명 이상이 진료를 받기 전 대기하다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그토록 인용하기 좋아하는 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의료 수가도 다른 국가들과 큰 차이가 있다. OECD 평균이 72라면 우리나라는 그에 크게 못 미치는 48, 미국의 경우 100으로 나타난다. 

지난 1977년 군사정권 시절 우리나라에 최초로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할 당시 관행수가의 절반 수준으로 시작된 고질적인 저수가 체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된 현재까지도 개선되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1034달러에서 2024년 3만6194달러로 35배 이상 늘었지만, 의료수가(환산지수)는 8배도 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 장별 원가보전율’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신포괄 시범사업에 참여한 종합병원 77개의 회계자료 기준 응급의료수가의 원가보전율은 45.0%에 불과했다. 2021년 36.9%에서 소폭 올랐지만 여전히 원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2022년 기준 기본진료료 수가도 원가의 50.5%에 그쳤고, 이밖에 △투약 및 조제료(22.1%) △주사료(66.2%) △마취료(66.2%) △처치 및 수술료 등(84.9%) △정신요법료(68.2%) △이학요법료(60.9%) △입원환자 식대(57.2%) 등이 원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의료기관에서 할수록 손해라며 꺼려온 원가보다 적게 보상된 수가 항목만 종합병원 이상의 청구건 가운데 3000여 개에 이른다.

이러한 고질적인 저수가 체제하에서 의사들이 ‘박리다매’식 진료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세계 최저 의사 수와 최저 수준의 수가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가성비’ 의료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 수를 정부의 주장대로 매년 2000명씩 대폭 늘린다면 필연적으로 의료비 상승을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일각에서는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의사 수도 자유롭게 대폭 늘려 의사 간의 경쟁을 더 활성화시켜 국민들이 그에 따른 유익을 누려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국가로서 사실상 ‘사회주의식 의료’를 하고 있고, 의료전달체계가 부재한 결과 의료 이용이 통제되지 않는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당연지정제’하에서 우리나라의 모든 의료기관의 요양급여 진료비는 정부가 설정한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묶여 있고 국민은 적은 본인부담금만 부담하면 되며 본인부담 총액 상한제까지 적용해 연간 800만 원이 초과되는 본인부담금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한다. 

이로써 적은 의료비 부담에 더해 ‘대형병원 쏠림’과 ‘닥터쇼핑’으로 상징되는 바와 같이 의료기관 종별이나 이용 횟수에도 제한이 없어 의사 수가 늘어나면 의료 행위량은 한없이 늘어나 전체 의료비 역시 대폭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인구 저출산과 고령화, 의사 수 증가로 인한 비급여 시장의 팽창은 전체 의료비 상승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앞서 국내 변호사 시장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2008년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현재 변호사 숫자가 종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법률 시장 규모만 커졌을 뿐 불필요한 법적 분쟁이 많아지고, 변호사와 법률 서비스의 질은 오히려 저하됐다고도 말한다. 더군다나 법률서비스 비용은 전액 본인 부담인 반면 의료서비스 비용은 건강보험에 의해 의료비 할인이 적용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OECD 국가의 대부분인 유럽 국가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와 의료제도가 비슷하고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일본과 비교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인구 1천명당 의사 숫자(2.6명)를 갖고 있다. 일본도 최근 들어서는 지방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공동화 현상이 발생해 ‘지역의료 살리기’가 화두로 떠올라 일본 정부도 지역 의사에 대한 각종 인센티브, 지역정원제 등 다양한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적정 의사 수와 관련해 의사수급분과위원회를 설치해 주요 결정사항을 논의하며 정교한 의사 수급 추계 등을 통해 의사가 부족한 지방의 의사 수요 문제를 개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도서관이 발간한 ‘일본의 의대 정원 증가와 지역 정원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의사 부족이 심각한 지자체를 중심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결정해 지난 2007년부터 12년까지 점진적으로 총 1795명을 늘렸고, 2019년에는 총 정원 9420명으로 최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일본 후생노동성 내 의사수급분과위는 오는 2029년에는 의사 인력 수급이 균형을 이루고, 그 후 인구 감소에 따라 장래에는 의사 수요가 감소해 향후엔 의사 정원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의사수급위의 운영도 매우 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이슈브리핑 8호, 일본 의사 수급 정책 논의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일본 의사수급분과위에서 논의된 내용은 모두 녹취록 수준으로 기록돼 후생노동성 홈페이지에 회의록 형태로 투명하게 공개된다. 의대 정원 증원 과정에서 정부가 진행한 각종 회의체의 회의록 공개 여부를 떠나 ‘회의록의 유무’에 관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한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윤석열 정부는 오는 2035년까지 의사 1만 명을 배출하기 위해 2025학년도부터 2029학년도까지 매년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정원 3058명에서 무려 70% 가까이 증가하는 것이고 개별 대학에 따라 325%까지 늘어나는 대학도 있다. 이에 필요한 교수 인력과 시설조차 부족한 상황이지만 정부는 계속된 의문 제기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2000명이라는 증원 숫자에 대한 합당한 근거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폭력적’ 의대 정원 증원 강행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의료현장과 학교를 떠난 지 반년이 넘도록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전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한민국 의료는 무너져 버릴 위기에 처해 국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지만 정부는 지금 이 시각까지도 “문제없을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의사회(회장 황규석)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근거 없는 비과학적인 2000명 의대 정원을 고집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치기보단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한다”며 정부에서 여야의정 협의체를 구성해 2026년부터 의대 정원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2025년 입학 정원 재검토가 없는 협의체는 무의미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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