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순창과 정읍, 전남 장성에 걸쳐있는 백암산은 741m로, 내장산(763m), 입암산(626m)과 함께 내장산국립공원에 편입되어 있는 산이다. 가을 내장산은 단풍으로 유명하지만, 백암산은 벚꽃과 비자나무숲으로 봄의 경치가 유명한 산이다.
대의산 봄 산행은 항상 5월 중순에 있어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기는 어렵지만, 전국의 산을 좋아하는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만 있다면, 푸르른 신록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좋은 산을 정해주시고, 산행을 완벽하게 준비해주신 류호정 대의산 회장님, 최경상 총무님 이하 광주시의사산악회 회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대의산 5월 산행은 항상 가장 큰 걱정이 비였다. 4월은 언 땅이 녹으면서 너무 짓물러 산행시 사고의 위험도 있고, 5월도 워낙 행사가 많은 달이라 날짜 잡기가 쉽지 않지만, 6월로 넘어갈 수 없는 것이, 우기가 시작될 수 있어 자칫 많은 인원들이 산행하는 데 무리가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산행은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갑작스런 의과대학정원 2000명 증원이라는 초유의 정책이 발표되면서 학생들의 휴학, 전공의들과 의대교수들의 사직이라는 의료계 초대형사건의 발발, 의협 회장 및 집행부의 선거 및 교체로 대의산 산행 시기를 결정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광주시의사회로서는 처음 대의산을 개최하는 터라 더욱 결정이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시간까지도 아직 무엇 하나 결정된 것이 없는 chaos 상태이니, 산행을 앞두고 집행진의 고민은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게다가 기본 고민이었던 비 예보까지 있어, 아마 머릿속이 하얗지 않았을까.. 싶다.
다행히 5시경 집을 나서니 비가 거의 그친 듯했다. 버스 출발지점인 압구정 현대백화점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여러 분들이 도착해 계셨다. 이윤수, 한미애 서울시의사회 대의원 전·현 의장님과 김해은 도봉구의사회장님, 그리고 잠시 후 황규석 서울특별시의사회 신임 회장님께서 도착하셔서, 같이 산행할 계획이었지만 하버드대학에서 오신 분들과 일차의료 관련 미팅이 잡혀 여기까지 마중만 나오셨다고 하신다.
모든 회장님들이 그렇겠지만 참 열정이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회원인 우리들로선 정말로 감사하고 든든한 일이다.
버스는 오전 6시에 출발, 정안휴게소에 도착 후 충분한 휴식 후 남창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니 9시20분이다.
가장 멀리서 출발한 서울 팀이 일찍 서두른 덕분에 가장 빨리 도착했다. 여유 있게 산행 채비를 하다 보니, 속속 각 지역 팀들이 도착하였다. 전북·충북·충남·대구·부산·인천 다들 먼 길 오시느라 고생들 많으셨지만, 어제 퇴근길에 만나고 헤어졌다 다시 만난 듯 빙그레 미소들이 절로 지어진다. 사람들의 인연,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산에서 1년에 한 두 번씩 10여년, 많아야 20여 번 만났을 뿐인데, 왠지 진한 동료의식이 전해져오니 말이다.
최경상 총무님의 사회로 산행 전 행사가 시작되었다. 강대식 의협 상근부회장님께서 격려금을 전달해주시고, 한미애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님과 류호정 대의산 회장님의 인사 말씀 후 단체 사진을 촬영하느라 흩어져 있던 회원들이 현수막 뒤에 집결하니, 인파가 상당하다. 150여명 정도가 이렇게 많다고 느껴지니, 전국의 의사들이 다 모이면 광화문 광장도 꽉 차려나 싶다.
산행이 시작되고 150여명이 줄을 지어 산에 오르니 자동 제어가 된다. 좁은 등반로를 같은 시간에 여러 회원들이 가다보니 빨리 앞설 수도, 등에 밀려 늦게 갈 수도 없다. 그저 앞사람을 따라 기계적으로 산을 오를 수 밖에. 나는 이렇게 오순도순 오르는 산행이 좋다. 산에 오래 있으면 좋고, 좋은 사람과 도란도란 얘기 나눠서 좋고, 아귀다툼 마냥 경쟁하지 않아서 좋고.
물론 체력훈련을 위해 산에 오르는 것도 좋다. 하지만, 나 홀로 훈련이나 선수용 훈련이 아니라면, 나이도 몸도 생각해서 내 몸도, 남도 챙겨가며 산행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어제 내린 비로 몽계폭포는 수량도 많았지만, 높이서 떨어지는 직선적인 폭포가 아니라, 2~3번 꺾이고 높이에 비해 폭이 넓어 선녀라도 나올 듯 몽롱한 꿈 속 풍경처럼 느껴져 이름을 참 잘 지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정상(상왕봉)에 오르니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땀을 말려준다. 어제 내린 비로 미세먼지도 적고, 흙먼지도 없고, 산행에는 최적의 온도와 습도인 듯 싶다. 산행 전에는 최악의 조건이었는데, 산에 오르니 모든 것이 최적의 상태로 바뀌어있는 듯하다. 다음 주말이면 의료사태가 잘 해결되어 모두들 지금과 같은 느낌이기를 기원해 본다.
정상에서 1시간쯤 내려가니 백학봉이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처럼 봉우리에서는 백학봉의 모습을 알 수가 없었다. 가파른 계단을 한참 내려가 영천굴을 지나 약사암에 이르러서야 주상절리 또는 학처럼 곧게 서있는, 그야말로 이름에 걸맞는 백학봉의 자태를 접하고서야, 작명하신 분의 식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하얀색 바위 때문에 백암산이라 일컬어졌을 듯하다.
하산 길에 보이는 백양사의 전각배치는 주변 산세와 어울려 아주 차분하게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는다. 백양사는 3일 후인 부처님 오신 날 준비 때문인 지 사람들의 출입이 많다. 명산에 명 사찰. 겉과 속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속세에서의 표리부동과 비교하니 마음속에 그윽한 미소가 번진다. 부처님 덕이려나.

하산 후 3시 경부터 대의산 총회가 개최되었다. 1년마다 대의산 회장이 교체되는 것이 통례여서 서울시의사산악회 유승훈 명예회장님이 새로운 대의산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현 류호정 회장님의 1년 임기가 아쉽게도 끝나게 되었다.
짧은 1년이지만, 대의산회장이라는 책임감은 사실 적지 않다. 전국의 의사들이 모이는 자리를 주관하고, 그 간의 고문들과 각 지역 회장님들과 어느 정도의 소통도 이어가야하고, 의협과 계속 접촉해서 날짜 등을 조율해야하고, 산행지를 정하기 위해 답사를 다녀와야 하고, 행여 비가 오면 어쩌나, 선물과 음식에 회원들이 즐거워 하려나 등등 잡스런 고민거리들이 회장 임기 중에는 한시도 떠나지 않는 법이다.
산행이 여러 차례라면 차라리 나을 수도 있으나, 1년에 2회 뿐이고, 특히 5월 산행은 정기총회를 겸하고 있고, 임기의 시작과 끝이 있어 더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류호정 회장님이하 대의산 임원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고생 많으셨다.
산행 후 다시 각자 지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되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일반 회원들은 임원진과는 달리 식사 후 시간이 많이 남는 느낌이고, 임원진은 회의니 인사니 하다보면 항상 너무 시간이 짧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분리불안증(?)이 있어 이별이 서투른 사람들은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시간을 아껴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시간을 충분히 써서 아쉬움을 많이 남기지 않는 것도 중요하리라. 임원진이 아닌 회원 분들도 대의산 산행을 먼 지역의 분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잘 이용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 대의산 회장에 취임하신 유승훈 회장님 축하드린다. 1년간 애써주시고, 다음에도 좋은 산행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