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응급실 한 번 돌아볼 게 아니라 의료체계 전반 들여다봐야”
“대통령이 응급실 한 번 돌아볼 게 아니라 의료체계 전반 들여다봐야”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4.09.08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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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외과의사회, 전공의·의대생 미래 생각하는 의료정책토론 개최
정부가 의대 정원 근거 제시하고 의료계는 거시적 개혁이론 제시해야
전공의들도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다”···선배 의사들 “수련체계 개편 필요”

“VIP(대통령)가 응급실 한 번 돌아보고 간다고 무엇이 바뀌겠습니까? 전반적인 체계를 들여다봐야죠.”

윤석열 대통령이 방문했던 권역외상센터의 센터장이 현재 의료 현장의 위기상황을 전하며 이같이 말했다. 

대한외과의사회(회장 이세라)는 8일 열린 추계학술대회에서 특별세션으로 ‘전공의와 의대생의 미래를 생각하는 의료정책토론’ 시간을 마련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조항주 의정부성모병원 외상외과 교수(대한외상학회 이사장)는 “외상외과를 하며 지금과 같은 위기는 없었다”며 “전공의가 없어 입원환자를 콜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의 배후진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콜 자체가 어렵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119 구급차도 예전처럼 병원과 상의해 상황을 봐가면서 이송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받는 곳으로 이송하고 있다”며 “병원문화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이 의정부성모병원에서 운영하는 권역외상센터를 방문했던 것과 관련해 “VIP가 응급실 한 번 돌아보고 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그보다 먼저 응급의료와 관련된 전반적인 체계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필수의료 대책이 지나치게 상급종합병원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과 전반적인 외과의 보험 수가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종민 대한외과의사회 보험이사(민병원 대표원장)는 “사실 현재 응급의료 대란이라고 하지만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이 그렇고 지금도 2차병원 응급실은 텅텅 비었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의 필수의료 대책은 3차 병원에 집중됐고 1, 2차 병원에 대한 대책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과 지원율이 계속 떨어지는 결정적 이유가 수련 과정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대학병원을 나와서 제대로 먹고 살 수가 없어서다”라며 “대학병원들이 저렴한 임금으로 전공의들을 쓰고 있을 뿐 전공의들은 외과 전공의 3년 수련을 마치고 전임의 1년을 더해도 봉합도 제대로 못한다”고 했다.

김 이사는 “현재의 상대가치점수 체계에서 외과 수가만 올릴 수 없으니 기껏해야 가산만 받고 있다”며 “결론적으로 전반적인 외과 수가를 올려야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이 대학병원에서만이 아니라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도 경증질환 관련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수련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민호균 보험이사(유미노외과의원)는 “사실 전문의라는 말에 어폐가 있다. 전공의가 대학병원에서 3년 동안 충분한 수련을 받지 못하니 추가로 전임의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저희 의원에서도 수련받은 전공의가 있는데 대학병원에서 1년 6개월 동안 수련받은 것보다 우리 의원에서 배운 게 더 많아 대학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만약 의대 증원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 전공의들에게 돌아오라고만 하면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경증질환을 진료하는 의원급에서도 전공의들이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전반적인 수련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적정한 의대 정원 규모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의료계에 떠넘기지 말고 정부 스스로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신 의료계는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거시적인 개혁이론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박형욱 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대한의학회 부회장, 변호사)는 발제를 통해 “정부가 의료계에 적정한 의대 정원의 과학적 근거를 요구하는 것은 정부의 폭력적인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 과학적 근거 없이 이뤄졌다는 것을 은폐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우리나라 필수의료의 몰락을 ‘시장실패’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정부 정책의 실패를 전가하는 것”이라며 “요양기관 당연지정제하에서 정부가 건강보험 수가를 결정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실패라고 할 수는 없고 정부 스스로 정책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현 시점에서 의료계가 해야 할 일은 거시적인 개혁이론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앞으로 의료계가 객관적 데이터를 근거로 보건의료의 새로운 구조를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전공의와 의대생 학부모들과 질의응답 시간도 마련됐다.

서울 소재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A 전공의는 “1년 동안 수련을 받으면서 병동 처방 몇 번 하고 혼난 기억밖에 없다. 대학병원들이 전공의들을 싼값에 잡일을 시키기 위해 부리고 있는 구조인데 이러한 수련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재원 확보는 어떻게 할 수 있나”라고 물었다.

이에 김종민 이사는 “사실 대학병원들은 수련체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있다. 그럼에도 하지 않은 것이다. 적자 20억 원이 난 병원이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고, 의료대란 이전 10여 개 대학병원이 전국 곳곳에 분원을 설립하려 했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며 “어차피 모두가 교수를 할 수는 없다. 대학병원은 본래 기능인 연구와 중증질환진료에 집중하고 경증질환을 진료하는 의원급에서도 전공의들이 실제로 개원했을 때 필요한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수련체계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 의대생의 학부모는 “의대 정원 사태 초기에 교수들이 한 달만 의료를 멈췄으면 이 문제가 다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힘없는 의대생과 전공의만 20대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휴학과 사직을 해 6개월 넘게 학업을 중단했고, 의대 교수나 개원의사들은 환자를 떠날 수 없다는 이유로 멀쩡히 근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 아이도 그렇고 의사들은 공부만 해서 여론을 무섭게 조성할 능력이 없는 것 같다. 의협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나”라고 물었다.

이에 이세라 회장은 “국민 여론을 긍정적으로 조성하기 위해 오늘 외상외과 교수까지 초빙했다”며 “현 정부가 과거 의정 간 약속은 물론 과학적인 국민의 의견도 반영하지 않으려고 해서 의사들도 많이 답답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외과 3년차 예정이었던 사직 전공의 B씨는 “저는 평생 바이탈을 하고 싶어 외과를 선택했고 지금도 하루라도 빨리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손만 굳어가고 있다. 현재 상황으로 봐선 전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지금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라고 물었다.

민호균 이사는 “저도 군대 전역하고 사법고시 준비 등으로 2년 동안 의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의미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여러분도 선배의사만 믿지 말고 더 좋은 세상을 스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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