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학교육 질 보장하겠다”···의료계, “인력·인프라 부족해 교육 절대 불가”
의대 열풍으로 무너져 가는 ‘이공계’···“의대 정원 증원이 상황 악화 더 부추겨”
의료계, 정시 모집 전까지가 사태 해결 위한 협의 마지노선 ‘정부의 결단 촉구’
지난 2월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하면서 의료계에서는 의학교육의 질 저하에 대한 우려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안덕선 원장은 지난 3월 성명에서 각 대학의 교육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발표된 정부의 대규모 증원과 배분안은 “지난 수십 년간의 노력을 통해 이룩한 의학교육을 퇴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대교수들도 ‘교육이 불가능’함을 지속적으로 호소해 왔다. 특히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전국의과대학 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최근 전국 40개 의대의 교수 96%가 ‘기존 정원인 3058명으로 동결 또는 감원해야 한다’고 응답했다는 설문 조사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의대교육의 질 저하는 법원에서도 증명된 바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5월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의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판결에서 “의대생의 학습권이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에 해당하고, 의대 증원으로 학습권에 있어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일부 인정했다.
의료계가 이 같은 우려를 나타내는 가장 절대적인 이유는 ‘교육에 필요한 인력과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 인프라의 문제: 어디서 교육할 것인가?
- 국감서 학생 1인당 강의실 활용 면적이 0.88m²(신문지 한 장)에 불과 비판
현재 정부의 정원 증원은 수도권이 아닌 지방 국립의대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정작 지방 국립의대는 학생들을 교육할 시설(건물 등)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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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 5월 전의교협의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의대교수의 95%는 ‘학생들 입학과 학년이 올라가는 시기에 맞춰 학교 강의실 등 건물이 적절하게 준비될 수 없다’(‘매우 그렇지 않다’ 78.6%·810명, ‘그렇지 않다’ 16.4%·169명)는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해당 설문에는 기존 정원 대비 10% 이상 증원되는 전국 30개 의대 소속 교수 1031명이 참여했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이번 2024년도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부산의대, 충북의대, 경북의대에서 증원된 인원을 수용하기 위한 준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부산의대는 증원된 인원을 수용했을 때 학생 1인당 강의실 활용 면적이 0.88m²(신문지 한 장 크기)에 불과하다고 비판받았으며, 경북의대에서는 좁은 강의실, 디지털 전환도 되지 않는 구식 기자재 등 처참한 교육환경에 “70~80년대 의대인 줄 알았다. 카데바 실습실에 가봤는데 귀신이라도 나오는 줄 알았다”고 질책이 쏟아졌다.
또한, 각 대학은 이제야 시설 확충을 위한 계획안을 제출한 상황이지만, 그마저도 지난 10월 국회예산정책처는 “건물 면적, 총사업비, 발주방식 정도에 대한 계획만 수립하고 있을 뿐, 교육부는 부지, 연차별 투자계획 등에 대해서는 구체화가 미흡한 실정”이라고 평가했다.
더불어 대학들은 사업이 진행될 2~4년 동안에 대해선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충북의대의 ‘의과대학 1호관 리모델링’ 사업은 올해 설계작업에 들어가 2026년 12월 공사를 마무리하고, 2027년 3월 학기부터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최소 2~3년간은 혼란이 예상되는 가운데, 충북대는 그전까지 다른 단과대학 강의실 또는 주차장 용지를 활용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아 논란이 됐다.
■ 인력의 문제: 누가 교육할 것인가?
- 9개 국립대는 향후 6년간 총 2천명 이상, 당장 내연에만 약 700명 필요
지난 4월 권복규 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는 대한의학회 E-뉴스레터 2024년 4월호 기고문에서 “(증원된 정원을) 운용할 인력은 하루아침에 구할 수 없다”면서 “인력을 채용해도 실제 상황에서 교육에 투입돼 교육 효과를 내는 데는 경험과 시간을 통한 조정이 필요하고 그동안의 혼선은 고스란히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교육부는 국립의대 전임교수를 앞으로 3년 동안 1000명, 내년에만 330명을 신규 채용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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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회 교육위원회 진선미 의원이 지난 8월 공개한 ‘비수도권 소재 국립대학 의대정원 증원 수요조사서’ 분석 자료에 따르면 9개 국립대는 향후 6년간 총 2천명 이상, 당장 내년에만 기초의학 교수 115명, 임상의학 교수 577명 등 약 700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의료대란의 장기화로 인한 교수들의 사직을 감안하면 현재 필요한 교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대해 진 의원은 현재 각 국립대가 필요로 하는 교수 규모와 차이가 커 교수 확보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 역시 지난달 ‘2025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 보고서를 통해 “9개 국립의대가 내년 채용을 동시에 진행할 경우 인력 확충이 어렵다”는 우려를 밝혔다.
또 수도권·비수도권 간 교원 인력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의대 전임교원 1명당 학생 수는 국립대 평균 2.5명으로, 수도권에 소재한 사립대(1.1명)에 비해 낮은 수준이었다. 설립유형별 평균 기초의학 교원 수는 지난 7월 기준 수도권 54.3명, 비수도권 35.5명으로 차이를 보였다.
예산정책처는 “증원된 의대생들의 수업 질이 저하되지 않도록 신규 교수 유입을 촉진하고 기초의학 교원 등 부족한 부분의 인력이 확충될 수 있도록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며 “국립대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전임교수 확보 계획을 명확하게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의대로 끝나지 않는 교육 파행···이공계도 ‘죽는다’
- 3년간 서울대 신입생 611명(공대생 187명), 카이스트 182명 의학계열 진학 이유로 자퇴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교육의 ‘무너짐’이 의학을 넘어 이공계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언론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서울대 신입생 611명(공대생 187명), 카이스트 182명이 의학계열 진학 등을 이유로 자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의대 열풍에 따른 이공대생의 이탈이 현재도 심각한 가운데, 의대 정원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영오 서울대 공과대학장은 지난달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지난해에만 110명 넘게 빠져나갔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로 올해 2학기에는 이탈자가 더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앞으로 최소 2~3년은 공대의 암흑기가 될 것 같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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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은 현실이 됐다. 급격한 의대 정원 증원으로 도전자가 몰리면서 지난 14일 수능에 응시한 반수생과 재수생 등 ‘N수생’은 총 16만1784명이었다. 이는 2004년(18만4317명)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다.
한편 지난 9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과학기술인재 성장·발전 전략’ 보고서를 통해 오는 2027년까지 7대 신기술 분야에서 인력공급 대비 일자리 수요가 34.5만명을 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산업계, 이공계가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이 사태를 더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도 증원에 대한 어려움과 문제점들을 일부 인정하는 모양새다. 최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자신의 취임 2주년 인터뷰에서 “의대를 많이 방문했다. 시설이 굉장히 열악하더라. 최고 인재들이 가는 곳인데 이런 곳에서 어떻게 최고의 교육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반면 의학교육의 질 저하에 대한 우려는 일축하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종합정책질의에서도 의학교육 개선을 위해 내년 5조원의 예산이 확보됐음을 강조하며, “교육의 질은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내년 의대 신입생 약 4500명을 교육할 시설과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휴학한 의대생이 복귀할 경우 1학년만 7500명이 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제대로 된 실습이 이뤄지기 힘들고 증원으로 인한 의학교육의 질 저하가 자명한 상황에서 의료계는 ‘교육의 질 저하는 곧 의료의 질 저하를 의미하며, 환자와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임을 강조하고, 낙관적인 정부의 태도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의료계는 2025학년도 정원 증원 취소 및 재조정을 현 사태 해결을 위한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 14일 수능이 치러진 상황에서 정시 모집 전까지를 사태 해결을 위한 협의의 마지노선으로 보고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 역시 ‘2025학년도 정원 조정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에서 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 지난 17일 진행된 여야의정 협의체 두 번째 회의에서 의료계와 정부는 해당 안건에 대해 평행선을 달리며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했다.
그러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정부가 지금의 태도를 고수하며 증원을 강행한다면 그 이후에는 되돌릴 수 없다. 이제는 정부도 의료계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