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Bullshit)’에 대한 생각
’개소리(Bullshit)’에 대한 생각
  • 홍영준(원자력병원 진단검사의학과)
  • 승인 2024.09.06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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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역 2번 출구 (109)

“의사가 살리겠습니다.”
  
지난 6월 여의도에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가 열렸을 때 많은 의사들이 들고 있던 손팻말 글귀다. 원래 이 행사의 주제가 ‘정부가 죽인 대한민국 의료를 되살리자: 의사가 살리겠습니다’였고 이 가운데 뒷부분만을 구호로 옮긴 것이다. 환자 곁을 무책임하게 떠난 의사들이 가뜩이나 못마땅하던 참에, 본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문구에 분노가 치민 한 대학교수가 교수들이 보는 어떤 신문 칼럼에서 의료계의 신뢰가 추락했다며 독한 표현을 했다.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사태의 진상이 어떠한지는 관심이 없고 단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의도가 있다.”
  
물론 본인이 직접 한 말은 아니고 ‘해리 프랭크퍼트(Harry Frankfurt)’라는 프린스턴 대학 철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하는 방식이었으나 그 칼럼 필자는 어쩌면 더 심한 소릴 하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의사들의 대국민 소통 방식이 그간 얼마나 미숙하고 자기중심적이었기에 이런 모욕까지 당하나 싶어 반성도 되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언론 지면에서 할 말과 못 할 말이 따로 있지 ‘개소리’라니...
  
나는 프랭크퍼트 교수가 애초에 어떤 의미로 ‘개소리’란 단어를 사용했으며 칼럼을 쓴 우리나라 교수는 과연 원저자의 말을 적절하게 인용한 것인지 궁금해서 참고문헌을 뒤졌다.
  
프랭크퍼트가 쓴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라는 69쪽짜리(영어 원문은 23쪽짜리) 작은 책은 뜻밖에 이해하기가 만만치 않은 철학서였다. 저자가 1986년 한 잡지에 기고했던 에세이를 2005년에 단행본으로 출간한 독특한 이력의 서적이다.
  
손바닥만 한 이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옮긴이의 고심이 얼마나 깊었을까 하는 점은 한국어 제목에 대한 그의 힘겨운 설명에서부터 느껴졌다. 영어 단어 ‘bullshit’은 헛소리, 엉터리, 실없는 소리, 허풍 등등으로 번역되는데, ‘헛소리’라고 옮기면 ‘nonsense’와 차별이 안 되는 게 역자에겐 고민거리였다. 아무렇게나 내뱉는 헛소리와 달리 화자(話者)의 숨은 의도가 ‘bullshit’에는 존재한다는 것 역시 문제였다. 
  
마침내 그가 한국어 제목의 결정적 힌트를 얻은 건 프랭크퍼트의 원저가 뉴욕타임즈에 베스트셀러로 소개되었을 때 도서명이 ‘On Bull___’이라고 ‘shit’ 부분이 블랭크 처리되었던 사실로부터다. 신문 지면에 그대로 싣기에 망측한 느낌이 들 정도의 단어라면 아예 비속어에 가깝게 ‘개소리’로 번역하는 게 적합하리라 판단한 것이다. 
 
프랭크퍼트의 정곡을 찌르는 강렬한 주장은 일찌감치 국내 지식인층에게도 인기를 얻었던 것 같다. 한국식으로 약간 각색하긴 했지만, 그가 주장하는 내용이 2015년 서울대학교 논술 문제로 고스란히 출제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수험생들에게 차마 ‘개소리’라 번역하긴 민망했던지 ‘빈말’이란 점잖은 단어를 썼기에 문장에 힘이 좀 빠졌다.
  
‘호국영령의 수호 아래 세계 일류 국가 반열에 오른 우리 조국’ 운운하는 정치인의 연설을 빈말, 곧 개소리의 전형적 사례로 꼽은 지문을 제시하면서, 빈말(개소리)과 거짓말의 차이를 논하고 왜 사람들이 거짓말보다 빈말(개소리)을 더 빈번히 하는지 설명하라는 문제였다. 그 해답은 전부 프랭크퍼트의 책에 들어 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진리인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서라도 진리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보이는 반면,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진리든 거짓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진리에 대한 이런 무관심이 개소리를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게 만든다. 들통났을 때 나타나는 결과도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덜 치명적인데 사람들이 개소리에 좀 더 관용적인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거짓말에 모욕감이나 분노를 느끼지만 개소리에는 그저 거슬린다는 표시로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외면하는 게 전부다.
  
작금의 의료사태 해결을 위한 의사들의 절규를 대뜸 개소리로 매도한 그 칼럼의 필자는 정말 의사들이 진리와 사실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이 그저 아무 말이나 과장해서 마구 던진다고 본 걸까. 적어도 프랭크퍼트의 책을 진지하게 여러 번 읽었다면 ‘개소리’란 단어를 그렇게 자극적, 선동적으로 엉뚱하게 들먹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졸지에 내가 개소리 공부를 하도록 동기부여 해 준 건 감사하지만, 정치학을 전공했다는 그 필자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프랭크퍼트의 문장이 있다. 번역 어투라 몇 차례 되풀이해서 찬찬히 읽어야 뜻이 드러난다.
  
‘어떤 주제에 대해 말할 기회나 의무들이, 화자(話者)가 가진 그 주제와 관련된 사실에 대한 지식을 넘어설 때마다 개소리의 생산은 활발해진다.’
  
사실 이건 칼럼을 쓴 그 교수보다 훨씬 영향력이 큰 우리 사회 정치인들과 고위 관료들이 명심해야 할 잠언이다. 왜냐하면 소위 ‘공인(公人)’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그런 불일치에 놓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프랭크퍼트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권력형 개소리’가 만연한 오늘의 대한민국 사회를 꼭 프랭크퍼트가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참고로 ‘권력형 개소리’란 표현은 프랭크퍼트의 책을 옮긴 이윤(이분도 철학이 전공이다)이 역자 후기에서 공들여 설명하고 있는 내용인데 너무나 공감이 되어 마음이 아프다.
 
“권력형 개소리는 진리에 대한 무시와 타자에 대한 멸시라는 이중적 악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일반적 개소리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해악이다.”
  
어느새 우리 사회 권력자들의 주된 레토릭이 되었으며 심지어 폭력적으로까지 변신한 개소리에 맞서는 법은 무엇일까. 현재로서는 ‘찍소리’를 소심한 대안으로 제안하고 싶다. 찍소리는 본래 ‘찍’하는 소리조차 내기 어렵다는 특성이 있지만, 다들 용기를 내어 볼륨이 작고, 가끔 처참한 비명에 가깝더라도 개소리의 폭거에 맞서 찍소리를 내는 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이 나라에 진리의 불꽃이 완전히 사그라드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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