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 보면 울고 싶은 날이 있고 그런 날 문득 듣고 싶은 음악이 있다. 내겐 ‘자클린의 눈물’이 그런 음악 중 하나다. 원래는 첼로 곡이지만 리처드 용재 오닐이 연주하는 비올라 선율이 더 마음에 든다. 그 슬픈 곡을 처음 알게 된 계기가 바로 옛날 <베토벤 바이러스>란 드라마에 카메오로 깜짝 출연한 용재 오닐 때문이었으니까.
드라마에서도 세계적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로 나온 그는 지휘자 강마에 앞에서 ‘자클린의 눈물’을 연주하다가 실력이 하나도 안 늘었다고 혼이 난다. “연주 여행 핑계 대고 어디 놀러 다닌 거 아니냐”고 능청스럽게 야단치던 우리의 강마에, 김명민 씨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TV를 통해 잠깐 접했지만 곡의 여운은 강렬했다. 어찌어찌 ‘자클린의 눈물’이란 제목을 알아냈고 그 곡이 품고 있는 사연을 접하게 되자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19세기 말을 살았던 독일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는 많은 오페레타를 쓰기도 했지만 첼로 연주자로도 유명했다. 그가 죽은 지 100년쯤 지난 1988년, 역시 독일의 첼로 연주자 베르너 토마스는 우연히 오펜바흐의 미완성곡 하나를 발견한다. 지독히도 슬픈 멜로디에 주목하던 베르너의 머릿속에 스르르 한 사람 얼굴이 떠올랐다. 바로 그 전 해에 42세로 사망한 영국의 천재 여성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였다.
자클린 뒤 프레는 스무 살 되던 해에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재해석함으로써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절정의 기량을 뽐내던 스물네 살 시절, 자클린은 재능있는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였지만 무명에 가까웠던 다니엘 바렌보임과 사랑에 빠진다. 부모의 반대에도 기어이 결혼식을 올린 그들은 뜨거운 열정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며 수많은 당대의 명음반을 발표한다.
결혼 4년 후 자클린에게 뜻밖의 불행이 닥친다.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에 걸린 것이다. 갖가지 운동 및 감각 이상 증상이 나타났고 첼리스트로서의 생명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난다. 은퇴 이후 오래도록 암울한 투병 생활을 보내던 자클린 앞에는 사랑하던 남편 바렌보임의 외도라는 또 다른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클린이 짧은 삶을 마감하자마자 바렌보임은 곧바로 내연녀와 재혼을 한다.
같은 첼리스트로 나이도 서로 비슷했던 베르너 토마스는 자클린의 이런 기구한 운명을 되돌아보며 오펜바흐의 미완성 첼로곡에 ‘자클린의 눈물’이란 제목을 붙였다. 안면신경이 마비되어 울고 싶어도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고 호소하던 자클린의 애절한 목소리를 기억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베를린에서 성악과 공연기획을 해오고 있는 옛친구가 최근 한국을 찾았기에 잠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바렌보임 이름이 툭 튀어나왔다. 자기와 바렌보임이 베를린에서 이웃사촌으로 친하게 지낸다는 것이다. 이번에 한국에 온 목적도 바렌보임이 키우고 있는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을 우리나라 한 지자체와 협의하기 위해서란다.
‘서동시집(西東詩集) 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는 바렌보임이 1999년 창단한 청소년 관현악단으로서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등 아랍인과 유대인을 망라하는 다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동시집’은 본래 괴테가 쓴 시집인데 괴테가 아랍어를 배우는 등 아시아 문학에 관심을 보였다는 데서 착안한 작명이다. 아시아, 특별히 중동의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가 이 오케스트라에 의해 전파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2011년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예술의 전당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 바렌보임이 매우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의 이름은 연관검색어처럼 즉각 자클린 뒤 프레를 떠오르게 했다. 비록 남편이 아픈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웠어도 자클린의 묘비에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사랑했던 아내(Beloved Wife of Daniel Barenboim)’란 문구가 적혀있다고 하니, 자클린은 죽는 순간까지 바렌보임을 사랑했고 또 남편의 사랑을 갈망했을 게 틀림없다. 바렌보임의 근황이 궁금해 물어보니까 내 친구는 즉답 대신 부스럭부스럭 CD 앨범 하나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만나기로 한 지자체의 시장님께 선물하겠다고 준비한 그 앨범은 베토벤 7번 교향곡으로 바렌보임과 다른 유명 연주자들이 함께 협연한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직접 받았다는 바렌보임의 친필 서명이 충격적이었다. 평생 무수히 써보았던 자기 이름일 텐데 온전한 직선 획이 하나도 없었다. 대지휘자가 덜덜 떨면서 쓴 이토록 볼품없는 필체라니...
바렌보임은 80세가 되던 작년에 건강상의 이유로 지휘자 일을 완전히 그만두었다고 한다. 정확한 병명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혈관염을 동반한 신경계통의 질환이라고 하니 왠지 난치성 자가면역질환일 듯싶다. 그의 지금 증상은 어쩌면 36년 전 세상을 떠난 자클린의 증상과 닮았을 것이다. 이제는 본인이 휠체어에 의지하여 옛사랑을 추억하면서 조금은 미안한 생각을 가질지 모르겠다.
바렌보임의 떨리는 서명을 뚫어지게 보다가 몇 년 전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역시 자가면역질환인 ‘만성 염증성 탈수초성 다발성 신경병증(CIDP)’에 시달리시던 말년의 아버지는 그 시원시원하던 젊은 날의 필체를 완전히 잃어버리셨다. 단 한 글자를 완성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마저 가늘고 구불구불 힘이 없었다. 딱 지금의 바렌보임 필체였다. 투병하던 자클린과 병상의 우리 아버지, 그리고 지금의 바렌보임이 만약 필담을 주고받았다면 그야말로 ‘동병상련’을 정확하게 느꼈을 것이다.
보고 싶은 분들과 그리운 이들이 생각나고, 아프고 후회스러운 기억이 밀려오고,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운명의 벽을 경험하며 한숨이 나올 때, 슬픈 음악을 들어보자. 오직 격노와 증오, 분노와 저주로 점철된 우리 사회에 지금 꼭 필요한 건 한 방울 한 방울의 눈물이 아닐까. 분명 마음을 닦아주고 영혼을 정화하는 기능이 있다. 자클린의 눈물, 나의 눈물, 그리고 리처드 용재 오닐의 음악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