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난민 시대, 선진국은 ‘회복기의료’로 막았다”
“재활난민 시대, 선진국은 ‘회복기의료’로 막았다”
  • 남궁예슬 기자
  • 승인 2025.01.0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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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난민 30% 증가···퇴원 후 재활 불가 환자 연 1만명
의료정책연구원 ‘회복기 의료체계 도입 방안’ 연구보고서 발표

우리나라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생산 인구 감소와 노인 의료비 증가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특히 심근경색과 뇌졸중 같은 주요 사망 원인은 급성기 치료 후 회복기 의료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의료체계가 부족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6일 ‘회복기 의료체계 도입 방안 연구’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2023년 사망원인 통계에서 회복기 치료가 필요한 질환 비중이 지속해서 증가하는 상황을 분석하며, 회복기 의료체계 도입의 필요성과 국내 제도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회복기 의료는 급성기 치료 후 환자가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재활 과정을 의미한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같은 질환은 급성기 치료가 적절하지 않으면 사망하거나 심각한 후유증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회복기 의료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의 의료전달체계는 급성기와 만성기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회복기 의료가 체계적으로 포함돼 있지 않다. 이로 인해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재활 난민’ 문제가 발생하며, 의료비 부담과 병상 부족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연구진은 고령화율이 높은 일본,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의 회복기 의료체계를 분석해 한국에 필요한 시사점을 도출했다. 일본은 고도급성기, 급성기, 회복기, 생활기로 구분된 의료단계를 운영하며, 의료계획제도를 통해 환자가 단계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특히 지역포괄의료병동을 도입해 고령 환자의 재택 복귀율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독일은 급성기 병원 내 조기 재활, 외래 재활, 부분 입원 재활 등 다양한 형태의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며, 의료기관 간 연계를 통해 환자가 퇴원 후에도 지속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입원 후 전환 케어’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미국은 전문요양시설, 장기요양병원, 입원재활시설 등으로 의료기관을 세분화해 환자의 기능 상태에 맞는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며, 재정적 구조를 통해 의료 이용을 최적화했다. 영국은 ‘중간 치료’ 단계를 통해 급성기 치료 후 기능 저하가 발생한 환자에게 집중 지원을 제공해 재입원률을 줄이고 재활 성과를 높였다. 캐나다는 전환 프로그램을 도입해 퇴원이 어려운 환자가 재택 복귀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입원 기간을 단축해 의료비 절감을 도모했다.

연구는 이러한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에 적합한 회복기 의료체계 도입 방안을 제안했다. 우선 급성기-회복기-만성기로 이어지는 단계별 의료체계를 구축하고, 지역 기반의 병상 자원 관리를 통해 의료 기능을 분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재활의료기관 지정 확대와 회복기 의료기관 인증제를 도입하고, 수술 후 회복과 재활 기능을 통합한 회복기 병원을 신설해 회복기 의료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수가 체계 개편도 필요하다. 회복기 의료 수가를 신설하고 가산제를 도입해 의료기관이 회복기 치료를 원활히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본인 부담률 조정을 통해 환자의 의료 이용을 독려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역사회 중심의 의료 모델을 도입해 환자 관리가 포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고, 의료 인력을 확충해 회복기 전문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 병상 가동률과 환자 전원율을 모니터링해 정책 개선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둔 한국의 의료체계에서 회복기 의료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다. 일본의 지역포괄의료병동, 독일의 전환 케어 시스템과 같은 선진국들의 성공 사례는 체계적인 회복기 의료가 재활 성과 향상과 의료비 절감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수가체계 개편과 회복기 전문병원 확충을 시작으로, 급성기-회복기-만성기를 잇는 통합 의료전달체계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이는 ‘재활 난민’ 문제 해소를 넘어, 고령화 시대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할 핵심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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