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부터 무슨 죽음 준비를 한다고?”
몇 년 전 한 의과대학 동기로부터 들은 말입니다. 나이가 들면 그때 천천히 준비하면 될 일을 왜 지금부터 죽음을 준비한다고 난리냐며 저를 아주 못마땅해했습니다. 그 친구는 죽음의 속성을 까맣게 잊고 있는 듯했습니다.
2024년 7월 초, 서울시청 근처에서 갑자기 승용차가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사망했습니다. 사망자 중 일부는 동료의 승진 축하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이었죠. 같은 해 12월 말에 일어난 무안공항 참사 희생자들 대부분은 모처럼의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고요.
이런 갑작스러운 죽음은 멀리서 나와 무관한 사람들한테만 일어날까요? 평소 운동으로 다져져 장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제 의대동기가 출근길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그날 저녁에 사망했다는 부고를 들었을 때, 죽음의 예측불허성을 또 한 번 절감했습니다.
요즘 언론의 영향으로, 100세까지 사는 일도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죽음은 아주 먼 훗일로 오해하고 삽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통보받으면 경황이 없어서 차분하게 준비고 뭐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황망하게 죽음에게 끌려가게 될 가능성이 큰 거죠.
건강할 때 유언장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미리미리 죽음에 대해 준비해야 하는데도, 부모나 자녀 양쪽 모두 얘기를 못 꺼냅니다. 자녀는 행여 부모가 어서 죽기를 바라는 걸로 오해할까 봐 얘기하지 못하고, 부모가 먼저 이런 얘기를 꺼내면 자녀는 무슨 안 좋은 의도라도 있는 건가 의심하거나 사별은 생각만 해도 슬프고 무서운 일이어서 아예 언급도 못 하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가족이 암이나 불치병 진단을 받게 되면 죽음이란 단어는 더욱 입 밖에 낼 수 없게 되죠.
이렇듯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며 사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인 것 같습니다. 비교종교학자인 한국죽음학회의 최준식 회장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은 평소 죽음에 관해 완전히 방치된 상태로 있다가 본인이나 가족의 죽음이 닥치면 벌렁 나자빠진다고 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갖고 있는 무관심과 부정, 회피 그리고 혐오를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태도는 외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입니다. 프랑스 영화 ‘여름의 조각들( Summer Hours)’은, 어머니의 75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두 아들과 딸, 손자손녀들이 모이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어머니는 언제 닥칠지 모를 자기 죽음에 대비하려고 장남에게 유품의 정리와 인계에 대해 얘기하지만,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장남은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어머니의 얘기를 흘려버리죠. 생일잔치가 끝나고 자녀들이 떠난 후 혼자 남겨진 어머니는 쓸쓸하게 독백합니다.
“죽는 얘기···. 당연히 할 말인데···. 내가 떠날 땐 많은 것들이 함께 떠날 거야. 기억들, 비밀들···.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해”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달려온 장남은 묘지 자리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차를 세운 채 흐느껴 웁니다. 몇 번이고 더 생일잔치를 해드리게 될 줄 알았지만, 그런 날은 다시는 오지 않게 된 것이죠.
부모가 머지않아 맞게 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자식에게 준비시키고 싶어 하지만 자식이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을 이 영화는 보여 줍니다.
한편, 죽음 관련 책을 읽고 인터넷 서점 감상평에 글을 올린 어느 독자는 “고혈압에 의한 합병증으로 어느 날 갑자기 장애인이 되셔서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시는 아버지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제는 미리 유언장도 작성해 놓으시고 마음의 준비도 하시라고 말씀드리면 버럭 화를 내시곤 한다. 이 책을 읽고 아버지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해 본다”라고 자식으로서 아버지에 대한 바람을 얘기합니다.
얼마 전 지인의 부친이 돌아가셔서 문상을 갔는데, 평소 건강하셔서 100세까지도 너끈히 사실 거로 생각해서 그랬는지 죽음에 대한 준비는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셨다고 했습니다. 수십 년 간의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마무리하지도 못한 채 황망하게 떠나갔으니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죽음에 대해 터부시하는 분위기와 생명연장 의료기술의 발달은 서로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의료진도 죽음을, 삶을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중요한 한 단계로 보지 않고, 의료의 패배나 실패로 보는 경향이 짙어지게 됐죠.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고통만을 주게 되는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환자의 가족이나 의료진이 매달리는 것도 이러한 가치관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행을 가기 전에 가려는 곳에 대해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기도 하고 관련 책자를 사서 열심히 정보를 얻으려고 합니다. 또 떠나기 직전까지 집안을 정돈하고 다른 가족을 위해 이것저것을 챙겨 놓거나 단속해 놓고,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필요한 여러 가지 사항을 메모로 남겨 놓기도 하죠. 하물며 장거리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으로의 여행을 위한 사전 준비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건축계의 공익요원’으로 불렸던 생태건축가 정기용 선생은 전라북도 무주에서 10년 넘게 주민센터, 도서관, 천문대, 납골당 등 여러 건축물을 설계했습니다. 오랫동안 지역 건축물을 설계하느라 많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죠. 그는 대장암으로 5년 이상 투병하다가 2011년 봄 타계했는데, 2012년 상영됐던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에서 말기 암 환자로서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철학 공부를 해야 하는 것 같다. 죽음에 대한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옛것을 추억하고 눈물을 흘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 산다는 게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세상은 무엇인지 하는 근원적인 문제들을 곱씹어 보고, 생각하고, 그러면서 성숙해진 다음에 죽는 게 좋겠다. 밝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죽음과 마주하는 위엄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
그러고는 타계하기 며칠 전 봄 내음을 맡고 싶다며 침대에 실려 가족, 친지들과 가까운 산으로 봄나들이하러 갑니다. 거기서 선생은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나무도 고맙고, 바람도 고맙고, 하늘도 고맙고, 공기도 고맙고,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반면에 비슷한 시기에 죽은 남미의 한 독재자는 정기용 선생과는 아주 대조되는 말, “죽고 싶지 않아, 나 좀 더 살게 해줘”라는 말을 남겼다고 외신이 전했습니다.
죽음을 성찰하고 미리 준비하는 일이 과연 쓸데없고 한가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